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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glas Engelbart 더글라스 앵겔바트

그의 생애

"As We May Think”더글러스 엥겔바트(Douglas C. Engelbart)는 1925년 1월 30일 오리건 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노르웨이, 스웨덴계 미국인 발명가이다. 그는 특히 컴퓨터 마우스의 발명자로 유명하다. 또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하이퍼텍스트, 네트워크 컴퓨터 등 인간과 컴퓨터 상호 작용 분야의 선구자이다. 1948년 오레건 주립대학교에서 전기공학 학사학위를 받았고, 1953년 UC 버클리에서 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55년에는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필리핀에서 레이더 기술병으로 해군에 복무하느라 2년간 휴학했다. 필리핀의 무선전기 기사로 해군에 복무하던 시절, 배니버 부시 Vannevar Bush가 쓴 '우리가 생각하듯 (As We May Think)'란 글에서 큰 영감을 받는다. 전쟁이 끝나고, 영감을 실현시키기 위해 UC 버클리에서 공부를 계속하여 1955년 박사학위를 받는다. 여기서 CALDIC을 만드는 데 관여 했으며 이후 1년간 박사 학위 논문에서 만든 기술을 상업화 하려는 저장기기 제조 회사를 설립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후 스탠퍼드 연구소에서 휴위 크레인과 함께 자기 논리 장치의 개발에 참여했다. 1948년 학위를 마친 엥겔바트는 NASA의 전신인 에임스 연구 센터에서 근무하게 되는데, 그는 주어진 자리에서 안주하지 않고 늘 '이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졌고, '일을 통해 인류에게 가장 많은 공헌을 남길 수 있는 목표를 세워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기고문의 대략적 내용 지금까지의 과학은 전쟁 무기 등 파괴적인 일에 쓰였지만, 이제는 평화를 위해 쓰여야 한다. 이를 위해 과학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집단 지성이 필요하며, '메멕스' 같은 장치가 여기에 도움을 줄 것이다. (메멕스는 하이퍼텍스트와 유사한 개념의 기계로, 기억 확장 장치의 약자. 마이크로 필름 형태의 정보를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해당 마이크로 필름을 불러와 정보를 획득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장치, 실제로 구현되진 못했지만, 훗날 인터넷과 하이퍼텍스트의 발전에 영향을 줌)

마우스의 아버지

자신의 발명품 마우스를 쥐고 있는 더글라스 엥겔바트 클릭, 커서, 스크롤, 패드 하면 연상되는 단어 마우스(mouse)는 컴퓨터의 그래픽 환경에서 사용되는 입력 장치이다. 손에 잡히는 정도의 크기인 마우스를 손으로 움직이면 컴퓨터 화면상의 화살표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마우스에 달린 단추를 한 번 누르거나, 연속으로 두 번 누르면 화살표가 가리키는 위치에 따라 여러 가지 동작을 실행시키는 식으로 입력 기능을 수행한다. 엥겔바트는 1968년 연구소가 마련한 컴퓨터 시스템 시연회에서 세계 최초의 마우스를 공개했다. 바퀴가 달린 작은 나무 상자 모양에 꼬리 같은 전선이 길게 이어져 있는 모습이 영락 없이 생쥐(Mouse)를 떠오르게 했다. 나무 상자 안에는 두 개의 톱니바퀴가 수직으로 맞물려 있었으며, 이들 톱니바퀴가 돌아가며 화면의 커서를 위 아래,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엥겔바트는 이 마우스로 1970년 특허로 따냈다. 하지만 마우스가 상품으로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년 이상이 지난 후였다. 1981년 제록스가 톱니바퀴 대신 볼을 집어넣은 상업용 마우스를 내놓았고 1983년 스티브 잡스가 세운 애플이 1개의 버튼이 달린 리사 마우스를 출시했다.

스탠포드 연구소에서 태어난 마우스

그의 본격적인 행보는 1957년부터 스탠포드 연구소에서 일하면서부터다. 그는 여기서 전자기기 소형화, 마그네틱 디바이스 등 12개 이상의 특허를 출원했다. 1962년 그가 쓴 논문 '인간 지능 증강: 개념 틀(Augmenting Human Intellect: A Conceptual Framework)'에서는 네트워크 기반의 정보 저장소(일종의 온라인 도서관) 과 전자 문서 저장/검색 방안을 주창했다. 이는 인간이 지식과 정보를 나눌 때 이를 찾고 전달하는 단순한 과정은 컴퓨터가 맡고, 사유와 통찰이 필요한 부분은 인간이 맡게 하자는 것이다. 이런 그의 행보에 대해 미 국방부 고등연구 계획국(ARPA)이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그가 개발한 것은 온라인 시스템(NLS, oN Line System)이다. NLS는 오늘날 PC 사용자에게 당연하다고 느끼는 그래픽 기반의 사용자 환경(GUI, Graphic User Interface), 하이퍼텍스트를 통한 문서 이동, 네트워크를 통한 화상 회의 등이 포함된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환경을 조금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손바닥 만한 장치도 함께 만들었다. 이 장치는 가로와 세로의 움직임을 인식할 수 있으며, 각종 인터페이스를 선택하는 용도에 쓰인다. 우리는 이를 마우스라고 부른다. NLS는 1968년 더글라스 엥겔버트의 시연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이와 함께 최초의 컴퓨터 마우스가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마우스는 이 시대에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당시 컴퓨터라는 기계는 일반 사용자가 아닌 대학이나 기관의 연구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하이퍼텍스트를 통한 문서 이동,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 전송 등이 더 주목 받았다. 그리고 NLS는 오늘날 인터넷의 원형인 ARPANET의 기초가 되고, 하이퍼텍스트의 기반 기술이 되며, 원격 회의라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 반면 이날 시연에 등장했던 마우스는 한동안 널리 쓰이지 않았다. 이 장치의 가치를 몰라봤다기보다 컴퓨터가 대중화되지 않은 만큼 수요도 그리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구소에서 휴위 크레인과 함께 자기 논리 장치의 개발에 참여했다.

마우스 특허로 받은 돈

 상업용 마우스가 등장한 것은 1980년대이고, 이 때 마우스에 주목한 사람은 스티브 잡스다. 1983년 애플이 내놓은 컴퓨터 리사는 텍스트 위주의 기존 PC(예 MS-DOS)와 달리 GUI를 적극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키보드 외에 그래픽 기반의 환경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고, 이렇게 해서 매킨토시용 마우스가 등장하게 됐다. 외형이나 기능도 최초의 마우스보다 개선됐다. 바퀴 2개를 이용해 움직임을 입력하던 것과 달리 내부에 있는 구슬로 움직임을 입력하는 ‘볼 마우스’로 발전했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 로지텍 등 다양한 기업이 마우스를 연구 개발했고 오늘날 마우스 구동 방식은 바퀴, 볼을 거쳐 광 마우스로 발전했으며, 유/무선 등으로 선택지도 늘어났다. 단 하나였던 버튼은 기본 2~3개에서 많게는 15개씩 갖춘 제품도 등장해 일반 사무직은 물론 그래픽 전문가나 게임 애호가 등 다양한 사람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고를 수 있다. 더글라스 엥겔바트는 최초로 마우스에 관한 특허를 냈지만, 특허료는 거의 받지 못했다. 특허 기간이 만료되고 나서야 마우스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으며 대량 생산됐기 때문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마우스로 번 돈은 애플이 특허권을 사들이면서 지불한 4만 달러가 전부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컴퓨터의 전설에 공헌하다

 마우스 발명가로 유명한 더글라스 엥겔바트는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상호작용, 하이퍼 텍스트 시스템 등 컴퓨터 기술의 혁신을 선도한 또 다른 디지털 시대의 개척자다. 그는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의 출현을 예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주도한 인간 지능 확장 프로젝트는 하이퍼텍스트 시스템과 네트워크 기술의 개발을 넘어 현재와 같은 집단 지성의 확장을 꾀한 기획으로 평가된다. 그는 인간과 컴퓨터의 소통(Human Computer Interface)을 위한 기술을 연구했으며, 초기 컴퓨터 기술과 인터넷의 기초를 닦아냈다. 엥겔바트의 마우스는 컴퓨터 기술의 혁신을 이뤄내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엥겔바트는 2001년 11월 BBC와 인터뷰에서 “나의 목표는 어떻게 집단적으로 더욱더 복잡한 문제와 당면한 문제를 풀어 세계를 바꿀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더글라스 엥겔바트는 PC와 네트워크 분야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그는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프로젝트국(ARPA)의 지원을 받아 여러 사람이 아이디어를 처리하는 통합환경인 ‘온라인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아이디어를 편집하는 기능, 화면을 통한 원격회의, 하이퍼텍스트 연계, 워드 프로세싱, 전자우편, 온라인 도움말 등의 기능을 제공했으며, 오늘날 사람들이 사용하는 PC용 유틸리티와 메일에 큰 영향을 주었다. PC 기술 발전에 있어 크게 기여한 더글라스 엥겔바트는 2000년 미국 국립기술훈장을 받은 뒤에도 연구원 생활을 계속했다. 그의 마지막 이력은 2005년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컴퓨터 역사박물관 연구원이었다.

NLDS에서는 GUI 사용을 위해 마우스가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1968년 제작 된 마우스는 3개의 버튼을 갖췄었다 NLS를 통해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이전까지 회의는 종이 서류를 나눠서 보거나 필름에 인쇄한 슬라이드를 영사해 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NLS 등장 이후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입력하고, 마우스 등의 장비로 원하는 위치를 표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2013년 세상을 떠나다

'마우스의 아버지’ 더글라스 엥겔바트가 세상을 떠났다. 2013년 7월 캘리포니아주 자택에서 타계했다. 사인은 신부전증이다. 더글라스 엥겔바트는 향년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이룩한 연구 성과는 사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감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가 고안해낸 마우스, 하이퍼텍스트 시스템, GUI 등은 오늘날 우리가 PC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당연한 것이라고 느낄 정도로 익숙하기 때문이기 때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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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glas_engelbart.txt · Last modified: 2017/06/12 08:42 by hkimsc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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