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r Tools

Site Tools


research_methods_lecture_note

Differences

This shows you the differences between two versions of the page.

Link to this comparison view

Both sides previous revisionPrevious revision
Next revisionBoth sides next revision
research_methods_lecture_note [2018/03/12 10:14] hkimscilresearch_methods_lecture_note [2019/03/20 09:02] hkimscil
Line 274: Line 274:
 이에 반대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은 이렇다. 필자가 "책상"에 대한 환기를 한 직 후에 독자의 머리에는 "책상"이라는 것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독자의 머리에 떠오른 책상은 바로 눈앞의 독서에 사용되고 있는 바로 "그" 책상인가? 아니면, 독자가 다른 시간대에 사용하는, 아파트에 있는 바로 그 "책상"인가? 그렇지 않은 듯 하다. 아니면, 중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무수히 많은 문학 작품을 읽는데 사용되었던 그 "책상"인가?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이도 아니면, 바로 그 책상을 보면, 독자가 일생 동안 경험했던 모든 책상이 머리에 연속적으로 떠오르는가? 그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독자의 머리에 떠오른 책상은 무엇인가? 과연 그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독자가 방금 본 책상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에 반대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은 이렇다. 필자가 "책상"에 대한 환기를 한 직 후에 독자의 머리에는 "책상"이라는 것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독자의 머리에 떠오른 책상은 바로 눈앞의 독서에 사용되고 있는 바로 "그" 책상인가? 아니면, 독자가 다른 시간대에 사용하는, 아파트에 있는 바로 그 "책상"인가? 그렇지 않은 듯 하다. 아니면, 중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무수히 많은 문학 작품을 읽는데 사용되었던 그 "책상"인가?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이도 아니면, 바로 그 책상을 보면, 독자가 일생 동안 경험했던 모든 책상이 머리에 연속적으로 떠오르는가? 그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독자의 머리에 떠오른 책상은 무엇인가? 과연 그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독자가 방금 본 책상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wp>Edmund_Husserl|Husserl]]은 바로 이와 같은 문제를 제기하면서 철학의 "안다는 사실"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를 암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현상학의 (Phenomenology) 시작이다. 이와 같은 접근 방법은 후에 Schutz, Garfinkel, Goffman 등에게 영향을 미쳐서 사회학에 대한 연구에도 널리 응용되게 되었다.+[[wp>Edmund_Husserl|Husserl]]은 바로 이와 같은 문제를 제기하면서 철학의 "안다는 사실"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를 암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현상학의 (Phenomenology) 시작이다. 이와 같은 접근 방법은 후에 Schutz (([[wp>Alfred_Schütz]])), Garfinkel, Goffman 등에게 영향을 미쳐서 사회학에 대한 연구에도 널리 응용되게 되었다.
  
 일단, 내가 경험하는 책상과 내 머리 속의 그것이 매치가 되지 않는다는 점은 경험론자가 주장하는 경험적 지식이 그리 확고하지만은 않다고 알려준다. 그렇다면, 독자가 경험하는 그 책상을 다른 사람이 경험한다면 동일한 것을 경험하는 것일까? 이 또한 사실은 그렇지 않다. 책상을 보는 위치는 내가 점유하고 있으므로 다른 사람이 나와 동일한 물체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사람이 나의 위치에서 본다면 동일한 물체를 경험할 수 있겠지만, 생활에서 경험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항상 상대가 경험하는 것과 내가 경험하는 것이 일치하는가 비교 확인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면, 내가 경험하는 것과 상대가 경험하는 것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우리는 그 차이를 "무시"하고 동일시한 후에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이 무시하는 태도를 "당연지사적인 태도 (taken-for-granted mannor)"라고 한다. 이와 같은 "당연지사"적인 태도는 일상 생활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늘 나타난다. 단지 우리가 확인을 하지 않을 뿐이다. 아래는 두 가족 구성원 사이의 대화이다. 일단, 내가 경험하는 책상과 내 머리 속의 그것이 매치가 되지 않는다는 점은 경험론자가 주장하는 경험적 지식이 그리 확고하지만은 않다고 알려준다. 그렇다면, 독자가 경험하는 그 책상을 다른 사람이 경험한다면 동일한 것을 경험하는 것일까? 이 또한 사실은 그렇지 않다. 책상을 보는 위치는 내가 점유하고 있으므로 다른 사람이 나와 동일한 물체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사람이 나의 위치에서 본다면 동일한 물체를 경험할 수 있겠지만, 생활에서 경험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항상 상대가 경험하는 것과 내가 경험하는 것이 일치하는가 비교 확인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면, 내가 경험하는 것과 상대가 경험하는 것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우리는 그 차이를 "무시"하고 동일시한 후에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이 무시하는 태도를 "당연지사적인 태도 (taken-for-granted mannor)"라고 한다. 이와 같은 "당연지사"적인 태도는 일상 생활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늘 나타난다. 단지 우리가 확인을 하지 않을 뿐이다. 아래는 두 가족 구성원 사이의 대화이다.
research_methods_lecture_note.txt · Last modified: 2021/04/10 17:34 by hkimscil

Donate Powered by PHP Valid HTML5 Valid CSS Driven by Doku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