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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반대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은 이렇다. 필자가 "​책상"​에 대한 환기를 한 직 후에 독자의 머리에는 "​책상"​이라는 것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독자의 머리에 떠오른 책상은 바로 눈앞의 독서에 사용되고 있는 바로 "​그"​ 책상인가?​ 아니면, 독자가 다른 시간대에 사용하는,​ 아파트에 있는 바로 그 "​책상"​인가?​ 그렇지 않은 듯 하다. 아니면, 중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무수히 많은 문학 작품을 읽는데 사용되었던 그 "​책상"​인가?​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이도 아니면, 바로 그 책상을 보면, 독자가 일생 동안 경험했던 모든 책상이 머리에 연속적으로 떠오르는가?​ 그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독자의 머리에 떠오른 책상은 무엇인가?​ 과연 그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독자가 방금 본 책상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 이에 반대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은 이렇다. 필자가 "​책상"​에 대한 환기를 한 직 후에 독자의 머리에는 "​책상"​이라는 것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독자의 머리에 떠오른 책상은 바로 눈앞의 독서에 사용되고 있는 바로 "​그"​ 책상인가?​ 아니면, 독자가 다른 시간대에 사용하는,​ 아파트에 있는 바로 그 "​책상"​인가?​ 그렇지 않은 듯 하다. 아니면, 중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무수히 많은 문학 작품을 읽는데 사용되었던 그 "​책상"​인가?​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이도 아니면, 바로 그 책상을 보면, 독자가 일생 동안 경험했던 모든 책상이 머리에 연속적으로 떠오르는가?​ 그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독자의 머리에 떠오른 책상은 무엇인가?​ 과연 그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독자가 방금 본 책상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
  
-[[wp>​Edmund_Husserl|Husserl]]은 바로 이와 같은 문제를 제기하면서 철학의 "​안다는 사실"​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를 암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현상학의 (Phenomenology) 시작이다. 이와 같은 접근 방법은 후에 Schutz, Garfinkel, Goffman 등에게 영향을 미쳐서 사회학에 대한 연구에도 널리 응용되게 되었다.+[[wp>​Edmund_Husserl|Husserl]]은 바로 이와 같은 문제를 제기하면서 철학의 "​안다는 사실"​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를 암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현상학의 (Phenomenology) 시작이다. 이와 같은 접근 방법은 후에 Schutz ​(([[wp>​Alfred_Schütz]])), Garfinkel, Goffman 등에게 영향을 미쳐서 사회학에 대한 연구에도 널리 응용되게 되었다.
  
 일단, 내가 경험하는 책상과 내 머리 속의 그것이 매치가 되지 않는다는 점은 경험론자가 주장하는 경험적 지식이 그리 확고하지만은 않다고 알려준다. 그렇다면,​ 독자가 경험하는 그 책상을 다른 사람이 경험한다면 동일한 것을 경험하는 것일까? 이 또한 사실은 그렇지 않다. 책상을 보는 위치는 내가 점유하고 있으므로 다른 사람이 나와 동일한 물체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사람이 나의 위치에서 본다면 동일한 물체를 경험할 수 있겠지만,​ 생활에서 경험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항상 상대가 경험하는 것과 내가 경험하는 것이 일치하는가 비교 확인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면, 내가 경험하는 것과 상대가 경험하는 것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우리는 그 차이를 "​무시"​하고 동일시한 후에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이 무시하는 태도를 "​당연지사적인 태도 (taken-for-granted mannor)"​라고 한다. 이와 같은 "​당연지사"​적인 태도는 일상 생활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늘 나타난다. 단지 우리가 확인을 하지 않을 뿐이다. 아래는 두 가족 구성원 사이의 대화이다. 일단, 내가 경험하는 책상과 내 머리 속의 그것이 매치가 되지 않는다는 점은 경험론자가 주장하는 경험적 지식이 그리 확고하지만은 않다고 알려준다. 그렇다면,​ 독자가 경험하는 그 책상을 다른 사람이 경험한다면 동일한 것을 경험하는 것일까? 이 또한 사실은 그렇지 않다. 책상을 보는 위치는 내가 점유하고 있으므로 다른 사람이 나와 동일한 물체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사람이 나의 위치에서 본다면 동일한 물체를 경험할 수 있겠지만,​ 생활에서 경험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항상 상대가 경험하는 것과 내가 경험하는 것이 일치하는가 비교 확인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면, 내가 경험하는 것과 상대가 경험하는 것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우리는 그 차이를 "​무시"​하고 동일시한 후에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이 무시하는 태도를 "​당연지사적인 태도 (taken-for-granted mannor)"​라고 한다. 이와 같은 "​당연지사"​적인 태도는 일상 생활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늘 나타난다. 단지 우리가 확인을 하지 않을 뿐이다. 아래는 두 가족 구성원 사이의 대화이다.
research_methods_lecture_note.1520819082.txt.gz · Last modified: 2018/03/12 10:14 by hkimscil